1990년대 중반, 미국 디트로이트의 한 제과회사는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었습니다. 판로를 늘려 매출을 높이기 위해 여러 방면으로 노력했지만, 밀크 쉐이크 만큼은 도무지 활로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집요한 리서치에도 불구하고 왜 고객들이 밀크셰이크를 사는지, 더 많이 팔리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죠. 이에 이 회사는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클레이턴 크리스텐슨 교수에게 자문을 구하기로 했습니다. 크리스텐슨 교수는 팀원들과 머리를 맞대고 고심한 끝에, 한 가지 실험을 제안했습니다. 바로 매장에서 밀크 쉐이크를 사 가는 고객들을 졸졸 쫓아다니며 그들의 행동을 관찰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며칠에 걸친 관찰 추적 끝에 크리스텐슨 교수 팀은 밀크쉐이크 판매량이 이상하게도 오전 9시 이전에 크게 몰린다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밀크쉐이크를 사가는 이들은 대게 혼자서 매장에 들려 밀크쉐이크 하나만 들고 황급히 차를 타고 가버리곤 했습니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이들은 아침 출근길에 밀크 쉐이크를 찾는 걸까요?
이들을 추적 조사한 결과 이전엔 알지 못하던 진실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의 대부분은 30분 이상 늘어지는 장거리 운전을 하는 직장인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출근길 차안에서 30여분 이상의 시간을 보내는 이들에게 밀크쉐이크는 천천히 녹는 음료이기에 긴 시간 동안의 심심함을 달래 주기에는 알맞는 음료였던 것입니다. 밀크쉐이크 대신에 선택해봤던 바나나는 빠르게 다 먹어버려 입이 금세 심심해져버리고, 도넛은 부스러기가 떨어져 운전석을 더럽히며, 베이글은 너무 딱딱해서 운전하며 먹기가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걸쭉한 밀크쉐이크는 달랐습니다. 빨대로 쪽쪽 빨아 먹다 보면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리니까요. 이로써 밀크셰이크가 운전대를 잡은 채로도 손쉽게 먹을 수 있고 어느 정도 허기도 채워주는 식사 대용 음료의 역할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크리스텐슨 교수의 책 ‘일의 언어’에서 소개되어 이제는 ‘잡 이론(Jobs to Be Done)’의 대표적인 에피소드가 된 이 밀크쉐이크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고객이 어떤 상품을 구매하는 행위가 사실은 그 제품 자체를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처한 문제나 결핍과 필요를 해결하기 위해 채용한 솔루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즉 제품의 구매란 소비자들은 자신의 과제 해결을 위해 선택한 솔루션 채용의 한 방식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전적으로 크리스텐슨 교수의 이러한 통찰에 동의하면서도, 과연 그의 책에서 추천한 포커스 그룹 인터뷰, 포커스 그룹 디스커션 혹은 심층 면담과 같이 소비자들에게 질문을 하고 이에 대해 소비자에게 직접 답을 들어서 분석하는 방식으로 밀크쉐이크 케이스에서와 같은 인사이트를 과연 제대로 얻어 낼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강한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광고 대행사 AE로서 그리고 게임회사의 광고주로서 일하면서 경험했던 포커스 그룹 인터뷰와 포커스 그룹 디스커션의 결과들은 깊이있는 통찰을 가져다 준 적이 거의 없었기에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 책이 마케팅의 여러 고민을 해결하기 위한 소비자 행동의 이해를 위한 방법으로 포커스 그룹 인터뷰와 포커스 그룹 디스커션을 제시하는 것으로 결론을 맺는 것에 아주 불편함을 느끼던 시점에 저는 일본에서 삼성 스마트폰 갤럭시3의 디지털 마케팅 전략의 기획과 검색 마케팅 캠페인의 운영에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당시는 일본에서 아이폰을 독점 공급하며 시장 쉐어를 확대하고 있던 소프트뱅크에 대응하기 위해 일본의 최대 무선 통신업체인 도코모가 삼성전자의 갤럭시 판매를 결정한 시기였기에 필자의 팀은 삼성전자 재팬의 디지털 마케팅을 돕게 되었습니다. 일본은 스마트폰 보급 초기인 상황이었기에 당시에는 일본 소비자들이 스마트폰 구매 결정을 위해 야후 재팬과 구글 재팬을 통해 많은 정보 탐색을 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특히 소프트뱅크가 상당한 예산을 투자하여 애플 아이폰의 일본 론칭 캠페인을 집행한 직후여서 일본 최대 무선 통신사인 도코모를 통해 갤럭시 론칭 TV캠페인을 대대적으로 진행했으나 예산 규모면에서 애플의 아이폰에 밀리고 있던 갤럭시의 입장에서는 효율성 높은 디지털 캠페인을 통해 아이폰과의 노출에서의 갭을 줄일 방법을 찾아야 했습니다. 초기 스마트폰 시장에서 더 나은 구매 의사 결정을 하기위해 온라인에서 정보를 찾고 있는 소비자들에게 갤럭시는 어떻게 더 효율적으로 접근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면서 저와 저희 팀은 검색광고와 검색엔진최적화의 역할 분담과 최적화를 통해 성과 극대화를 위한 전략을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과제를 고민하던 중, 저는 맥킨지가 2009년에 발표했던 소비자 구매 여정(Consumer Decision Journey)이라는 논문과 구글이 2011년에 발표한 ‘Zero moment of truth’란 논문을 읽게 되었고, 이 두 논문은 저는 ‘일의 언어’를 읽다가 느꼈던 불편함을 해결할 가능성을 저에게 보여줬습니다.
고객 구매 여정의 각 단계에서의 소비자 심리 상태의 변화와 이 때 각 단계별로 어떤 미디어 접점이 영향을 주는 지 등에 대해 연구한 맥킨지의 논문과 소비자 구매 의사 결정 과정에서 전통적으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던 FMOT(First moment of truth, 브랜드와 소비자가 매장 등에서 처음으로 만나게 되는 순간을 지칭)에 앞서 디지털 환경의 발전으로 매장에 가기 전에 구매 의사 결정에 영향을 받는 단계인 ZMOT(Zero moment of truth, 주로 디지털 미디어를 통해 매장에 가기 전에 제품 정보를 조사하는 단계)의 출현과 이 단계에서 검색의 역할이 제일 크다는 점을 강조한 구글의 논문은 바이어스가 생길 가능성이 높은 질문과 응답에 기반한 포커스 그룹 인터뷰와 포커스 그룹 디스커션이 아니라 구매 여정 중인 소비자들이 실제로 직접 입력한 검색 데이터를 기반으로 소비자 행동에 가려진 의도를 파악하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당시 저는 이 숙제를 풀어내기 위해 일본의 주요 검색엔진인 야후 재팬과 구글 재팬에서 일본 소비자들이 자신이 원하는 스마트폰을 찾기 위해 사용한 약 2만여개의 검색어를 수집하여 분석했습니다. 스마트폰을 구매하려는 사람들이 구매 여정 초기에 사용하는 넌브랜드 검색어들과 구매 검토를 시작한 브랜드를 포함한 브랜드 검색어를 모아 분석해본 결과 갤럭시의 경우는 아이폰에 비해 동일 기간 판매 단말기 대수 대비 브랜드 키워드 검색 볼륨이 아이폰에 비해 약 2.5배 이상 높게 나왔습니다. 갤럭시의 경우 화소 수나 화면 크기 같은 기본적인 기능과 스펙과 관련한 정보 이외에도 배터리 수명이나 방수 기능 같이 일상에서 불편함을 느낄 수 있는 요소들에 대해서도 검색을 통해 검토해 본다는 점을 확인 할 수 있었는데, 이것은 갤럭시를 구매 검토 중인 소비자는 갤럭시와 관련한 다양한 키워드를 일일이 검색해 본 후에 구매 결정을 하는데 반해 아이폰 유저들은 훨씬 적은 횟수의 검색 후에 바로 구매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저희 팀은 이러한 검색 데이터 분석으로 확보한 인사이트를 바탕으로 기존의 플립폰에서 스마트폰으로 갈아탈 지를 고민하는 소비자 중에서 아직 아이폰으로 결정을 하지 않은 소비자들이 검색하는 넌 브랜드 키워드와 토픽들을 발굴하고 이들의 검색 결과에서 갤럭시에 긍정적인 콘텐츠를 아래와 같이 적극적으로 노출시켜 갤럭시 구매를 검토하도록 유도하였고, 전체 디지털 마케팅 효율을 높일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당시 갤럭시 S3은 일본에서 상당 기간 10% 이상의 높은 시장 쉐어를 유지하였습니다. 아래의 그래프는 당시 스마트폰 메모리, 스마트폰 충전, 스마트폰 CPU, 도코모 스마트폰 등의 주요 넌 브랜드 키워드의 검색 결과에서 갤럭시 공식 페이지의 콘텐츠가 빠르게 상위로 랭크되어 가고있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렇게 고객의 검색 여정 분석을 기반으로한 캠페인 통해서 월 10만 이상의 양질의 자연 유입 트래픽을 추가로 만들어 내어 검색 마케팅에서 경쟁사 대비 높은 효율을 달성하였습니다.
이런 경험을 통해서 저는 소비자들이 구매 의사 결정을 위해서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검색 키워드와 이 키워드와 토픽 그리고 이와 관련한 검색 볼륨 데이터 분석을 통해서 시장의 경쟁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나아가 구매를 검토 중인 소비자들의 행동 패턴과 각 단계에서 소비자들이 가진 관심 토픽을 알 수 있다는 것과 여기서 확보한 인사이트를 기반으로 마케팅 캠페인의 효율을 높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일의 언어’에서 시작한 고민과 갤럭시 프로젝트의 과제가 구글과 맥킨지에서 나온 두개의 논문을 통해 고객 여정 전반을 검색어와 토픽으로 맵핑을 한다는 아이디어를 통해 해결될 수 있다고 확신하게 된 그 순간이 바로 인텐트 마케팅과 리스닝마인드가 시작된 순간이라고 말 할 수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