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P가 일본에 처음으로 소개 된 것은 호주 에런버그-배스(Ehrenberg-Bass) 연구소의 바이런 샤프 교수와 제니 로마니우크 교수의 “How Brands Grow” 1권과 2권이 번역서로 출간되면서 부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후 일본의 여러 마케팅 리서치사, 광고대행사, 컨설팅 펌 그리고 학계와 업계 단체(JMA 등)이 관심을 보이면서 CEP는 브랜드 전략 수립의 새로운 프레임워크로 자리 자리를 잡아가게 됩니다.
이런 추세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기업을 꼽으라면 저는 일본 리서치 업계의 리더 기업 중의 하나인 마크로밀(Macromill)을 선택할 것입니다. 마크로밀은 CEP개념을 “브랜드 상기도(想起度)를 새로운 시각에서 파악하는 마케팅 컨셉”으로 소개하며 브랜드와 카테고리의 연결고리를 생활 상황이나 목적 측면에서 분석하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기존의 브랜드 상기도 조사는 “탄산음료라고 하면 떠오르는 브랜드는 무엇인가요?”와 같이 카테고리→브랜드의 1대1 매칭을 묻는 방식이었습니다. 반면 CEP 개념에서 상기도 조사를 할 때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어떤 상황에서 해당 카테고리를 떠올리는가”를 묻습니다. 탄산음료를 떠올리는 어떤 상황으로는 “아침식사 때”, “무더운 여름 오후”, “기분을 전환하고 싶을 때” 등의 상황이나 목적이 탄산음료라는 해당 카테고리를 떠올리게 만드는 CEP(카테고리 진입점)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소비자가 어떤 맥락에서 카테고리(상품군)를 떠올리고 나아가 특정 브랜드를 연상하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CEP 개념의 핵심입니다.
마크로밀은 바로 이 관점으로 CEP를 활용해서 브랜드 상기도를 보다 입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다만, 다양한 CEP 마다 소비자가 떠올리는 브랜드가 달라질 수 있이 때문에 기업의 입장에서는 가능한 많은 상황(CEP)에서 자사 브랜드가 떠오르도록 만드는 것이 구매 가능성을 높이는 주요한 전략이 된다고 설명합니다. 실제로 한 브랜드가 더 많은 CEP를 확보한다는 것은, 소비자의 다양한 생활 맥락 속에서 그 브랜드를 떠올릴 빈도가 높다는 뜻이기에 자연스럽게 CEP의 추가적인 확보가 매출 성장에 기여할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이러한 CEP 접근법을 도입하면, 기존의 단순한 “카테고리-브랜드” 상기도 측정에서 멈추지 않고 현실적이고 입체적으로 브랜드의 포지션을 이해해서 취해야할 액션 아이템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마크로밀은 설명합니다.
마크로밀은 CEP 개념을 자사 컨설팅과 데이터 서비스에도 접목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소비자 구매이력 데이터 플랫폼인 “QPR”을 활용하여, 특정 상품군의 세부 카테고리 정의와 각 CEP별 시장 볼륨을 파악하는 조사를 제안하고 있습니다. 이는 CEP 관점의 브랜딩 전략을 수립하려는 기업에게 실제 데이터에 기반한 시장 규모 평가와 우선순위 결정을 도와주는 서비스입니다.
또한 마크로밀은 CEP 개념을 알리기 위해 “새로운 시장을 찾는 카테고리 엔트리 포인트 조사” 세미나를 열어 CEP를 활용한 신시장 발굴 기법을 소개하는 등 온디맨드 세미나를 자주 개최하며 관련 보고서 발간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세미나에서는 비즈니스 성장의 두 축(시장 쉐어 확대와 카테고리 성장)을 달성하기 위한 CEP의 유용성을 설명하고, CEP를 활용한 조사 방법을 공유하였습니다.
2023년 마크로밀의 리서치 플래너 하라 다쿠야(原 拓也)는 마케팅 전문지 MarkeZine에 “CEP=카테고리 엔트리 포인트의 기본 해설” 및 “CEP의 조사 방법” 연재 기고를 실어 CEP의 개념과 조사 프로세스를 상세히 소개했습니다. 전편 기사에서는 CEP의 개념과 중요성을, 후편에서는 “특정(식별)–発想(발상)–評価(평가)”의 3단계 조사 방법론으로 CEP를 활용하는 절차를 설명하고 있어 기업들이 CEP를 실제 마케팅 전략에 적용하는 데 참고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이처럼 마크로밀은 사내외 채널을 통해 CEP 개념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으며, 자사 고객사들에게 브랜드 진단과 성장 전략 수립에 CEP를 활용한 컨설팅을 제공하는 등 실무 적용에도 힘쓰고 있습니다.
마크로밀 이외에 CEP의 전파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기업은 어디일까요? 저는 마케팅 컨설팅 기업인 콜렉시아(Collexia)를 꼽고 싶습니다. 콜렉시아는 2024년 1월 DAIKO와 Collexia가 공동 개최한 세미나를 기반으로 작성된 시리즈 기사 「ブランド復活の鍵、CEPとは?」(브랜드 부활의 열쇠, CEP란?)에서는, 오래된 장수(롱셀러) 브랜드의 성장 정체 문제를 CEP 관점에서 풀어보는 접근을 소개했습니다.
Collexia의 대표 무라야마 미키로(村山 幹朗)는 JMA(일본마케팅협회) 공인 마케팅 마스터이기도 한데, 5000건 이상의 고객 여정을 분석한 경험을 바탕으로 브랜드 재성장에 CEP 개념을 적용하는 방안을 제시했습니다. 이들은 실제 실시한 “CEP 브랜드 진단” 조사 결과를 통해 브랜드와 CEP의 구체적 관계를 설명하고 있는데, 예컨대 아이스크림 카테고리를 분석한 결과 시장 점유율 1위 브랜드는 다양한 CEP에서 1위를 차지하며 여러 생활 문맥을 포괄하고 있지만, 점유율이 낮은 브랜드일수록 우위를 가진 CEP가 거의 없었다고 보고합니다. 여기서 콜렉시아는 “경쟁 브랜드가 모두 간과한 CEP를 찾아 공략하는 것”이 침체된 장수 브랜드를 부활시키는 열쇠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 프로젝트에서 콜렉시아와 함께 일한 DAIKO는 “브랜드 부활의 핵심은 CEP 활용에 있었다!”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는 일본의 주요 광고업체들 또한 CEP를 새로운 브랜드 전략 툴로 주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콜렉시아의 마케팅 사이언티스트인 세리자와 렌(芹澤 連)은 그의 최근 저서 『미고객 이해(未顧客理解)』을 통해 카테고리 엔트리 포인트(CEP) 개념을 설명하면서 구매하지 않는 사람들, 즉 미고객의 확보가 브랜드의 성장에 기여하는데 이를 위해 CEP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다양한 에비던스와 사례를 통해 증명하고 있습니다.
콜렉시아는 기업 내부 교육 및 트레이닝을 통해 100개 이상의 기업에게 미고객 이해와 CEP 활용 노하우를 전수하여 기업들이 미고객을 효과적으로 이해하고 브랜드 성장과 시장 성장 전략을 수립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일본 리서치 업계 1등인 인테이지(Intage), 네오마케팅, 벨류즈 등이 적극적으로 CEP개념을 활용한 다양한 캠페인과 리서치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CEP를 일본에 전파하고 있는 몇몇 리딩 기업을 소개했습니다. 이제부터는 CEP 도입과 그 성공 사례를 몇가지 소개하겠습니다. 우선은 FMCG 분야에서의 사례입니다.
조사에 따르면, 프리미엄 아이스크림 브랜드 하겐다즈(Häagen-Dazs)는 총 14개의 일상 상황 CEP 중 8개 상황에서 1위로 연상되는 등 다수 CEP를 선점하고 있었습니다. 예컨대 하겐다즈의 주요 CEP 중 하나는 “조금 사치스러운 작은 행복을 느끼고 싶을 때”로, 응답자의 57.8%가 이 상황에서 하겐다즈를 연상했다고 합니다.
하겐다즈는 이렇듯 여러 생활 문맥(아침, 간식, 더운 날, 기분전환 등)에서 “아이스크림 = 하겐다즈”라는 연상 연결고리를 확보하여, 어떤 때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어져도 가장 먼저 떠오르는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다중 CEP 확보는 실제로 하겐다즈의 높은 시장 점유율과 연결되어 있으며, 브랜드 성장을 뒷받침하는 요인임을 알 수 있습니다.
반면 가리가리군(ガリガリ君)과 같이 시장 점유율은 낮지만 특정 CEP에 특화된 브랜드도 주목할 만합니다. 가리가리군은 저가 얼음과자로, “무더운 날 더위를 달래고 싶을 때”라는 하나의 CEP에서 44.4%라는 압도적 연상율을 기록했습니다. 전체 시장에서 차지하는 매출 비중에 비해 해당 상황만큼은 소비자 기억 속에 가장 강하게 자리잡은 브랜드인 것입니다.
이처럼 “강력한 CEP” 하나를 보유한 브랜드는 상대적으로 낮은 점유율에도 불구하고 소비자 선택률에서 높은 존재감을 발휘할 수 있으며, 특정 소비 맥락에서는 1위 브랜드에 필적하는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분석됩니다. 이는 시장 도전자 브랜드가 한정된 자원으로도 특정 사용 상황을 공략하여 니치에서 강자의 위치를 차지하는 전략으로, 실제로 가리가리군은 “여름철 더위 해소” 아이스크림으로 독보적 이미지를 구축해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CEP 분석은 새로운 기회 영역 식별에도 유용합니다. 앞서 아이스크림 조사에서 “목욕 후에 무언가 먹거나 마시고 싶을 때”라는 CEP는 시장 규모가 네 번째로 큰 상당한 수요 상황이었지만, 특이하게도 어느 브랜드도 약 20% 내외의 고만고만한 연상율만 보일 뿐 뚜렷한 1위가 없었습니다. 이는 아직 어떤 브랜드도 이 CEP를 확실히 장악하지 못한 상태로, “블루오션”에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콜렉시아 팀은 이 사례를 들어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CEP인데 지배적 브랜드가 없다면, 해당 상황을 집중 공략함으로써 시장 점유율을 크게 높일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조언했습니다. 예를 들면, 아이스크림 제조사가 “목욕 후 달콤한 즐거움”이라는 메시지로 신제품이나 캠페인을 전개해 해당 CEP에서 두각을 나타낸다면,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FMCG의 다른 예로 맥주 시장을 들 수 있습니다. 마케팅 컨설팅사 Sellwell은 CEP 해설에서 “목욕 후 맥주가 생각날 때 떠오르는 브랜드”로 아사히 수퍼드라이나 기린 이치방시보리를 예로 들었습니다. 실제로 많은 일본 소비자에게 “목욕 후 시원한 한 잔”은 맥주 카테고리의 대표적 진입 상황이며, 각 맥주 회사는 오래전부터 이 CEP를 잡기 위한 CM 컨셉(“목욕 후 한 잔의 행복”)을 활용해 왔습니다.
또 “무더운 날에는 콜라나 사이다가 떠오른다”는 설명에서 볼 수 있듯이, 청량음료 업계에서도 “더울 때 갈증 해소”라는 CEP를 두고 코카콜라, 사이다 등 브랜드 간 경쟁이 이루어져 왔습니다. 이러한 상황별 연상 이미지는 일본 FMCG 브랜드 전략의 중요한 축으로, CEP 개념이 등장하기 전부터도 CM나 광고 카피에서 상황 연출을 통해 소비자 기억 형성에 주력해 온 바 있습니다. 이제는 이를 체계적으로 조사하고 수치화함으로써 보다 전략적인 브랜드 포지셔닝에 활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다른 FMCG 사례로, 스포츠음료 포카리 스웨트(Pocari Sweat)의 CEP 전략 변화를 들 수 있습니다. 앞서 Values 세미나 내용에서, 포카리 스웨트는 전통적으로 “운동 후 수분보충”이나 “갈증 해소” 상황에서 떠오르는 이온음료로 알려져 있었는데, 최근에는 “열이 났을 때의 수분 섭취”라는 새로운 CEP를 구축한 것이 주목됩니다.
과거 일부 소비자가 감기 걸려 열날 때 포카리를 마시기 시작한 행동이 있었고, 이를 제조사가 마케팅으로 포착하여 “열이 날 때 포카리” 이미지를 프로모션한 결과 이제는 많은 소비자가 자연스럽게 “아플 땐 포카리”를 연상하게 되었다는 분석입니다. 또한 사우나 붐을 타고 “사우나 후 오로나민C와 포카리를 섞어 마시는 오로포 문화”가 나타나면서, “사우나 후 수분보충=포카리”라는 신규 CEP가 형성된 점도 흥미로운 변화입니다.
이처럼 FMCG 업계에서는 시대 변화와 생활 트렌드에 따라 새로운 CEP를 지속적으로 발굴하고, 이를 선점하기 위한 마케팅을 펼쳐 브랜드의 기억 자산(Memory Structure)을 확장해나가고 있습니다.
일본의 자동차 산업은 전통적으로 브랜드 고유 이미지와 사용 맥락이 강하게 연결된 분야로, CEP 개념을 활용한 마케팅 잠재력이 큰 영역입니다. 다만 FMCG처럼 구매 빈도가 높지 않고 고관여(long consideration) 제품이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CEP 조사를 통해 성과를 거두었다고 공개된 사례는 아직 많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자동차 회사들은 오래전부터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과 상황별 니즈를 고려한 모델 포지셔닝을 해왔는데, 이것이 일종의 CEP 전략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이를 갖게 되어 더 안전한 패밀리카가 필요할 때” 떠오르는 자동차로 토요타 시에나나 혼다 오딧세이를 떠올리게 하거나, “주말에 아웃도어 여행을 떠나고 싶을 때”는 스바루의 SUV를 연상하게 하는 식의 마케팅입니다.
일본 자동차 기업들은 TV광고나 웹 캠페인에서 가족 여행, 출퇴근, 드라이브 데이트, 캠핑 등 구체적인 생활 장면을 연출함으로써 각각의 상황=해당 차량이라는 연상 공식을 소비자에게 주입해왔습니다. 이는 CEP의 관점에서 보면 “자동차 카테고리의 세부 진입 상황”을 공략한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스바루는 “안전한 전천후 주행” 이미지를 강조하여 “눈길이나 빗길 운전 시 떠오르는 차량”이라는 CEP를 차지하고자 했고, 미니밴 차량들은 “大家族でのお出かけ(대가족의 외출)” 상황을 광고 소재로 삼아 패밀리카 CEP를 선점하려 노력해왔습니다.
최근 들어 일본 자동차 업계에서도 데이터에 기반한 CEP 분석 움직임이 나타날 조짐입니다. 예를 들어, 어느 자동차 제조사가 SUV 시장의 CEP를 조사한다면 “어떤 상황에서 SUV를 고려하게 되는가”를 파악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가령 “주말 캠핑을 계획할 때”, “대설(大雪) 등 악천후에 대비할 때”, “차로 장거리 여행을 떠나고 싶을 때” 등이 SUV 카테고리의 대표 CEP가 될 수 있습니다.
만약 자사 브랜드가 이 중 특정 상황에서 경쟁우위를 갖지 못하고 있다면, 해당 CEP를 겨냥한 메시지 개발이나 상품 기능 어필을 통해 브랜드 상기도를 강화하는 전략을 세울 수 있을 것입니다. 아직 구체적인 성공 사례가 공개되진 않았지만, 자동차 기업들도 CEP 개념을 활용해 각 차량 모델의 이상적 사용 시나리오를 정의하고 그 시나리오에서 첫손에 떠오르는 브랜드가 되기 위한 경쟁을 벌일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는 결국 차량 구매 고려군(Evoked Set)에 자사 모델을 포함시키는 전략으로, CEP 개념과 일맥상통합니다.
이상 우리는 일본에서 카테고리 엔트리 포인트(CEP) 개념은 빠르게 확산되며 브랜드 성장의 핵심 전략으로 자리 잡고 있는 모습을 살펴 보았습니다. 마크로밀, 콜렉시아, 인테이지와 같은 리서치 기업들이 CEP 기반 조사와 컨설팅을 제공하고 있으며, FMCG, 자동차, 화장품, 가전 등 다양한 산업에서도 CEP를 활용한 포지셔닝 전략이 점차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일본 시장에서 CEP 개념이 더욱 체계적으로 발전하며, 브랜드가 소비자의 기억 속에서 더 많은 ‘진입점’을 확보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굳이 일본을 예로 들어 CEP를 설명한 이유는 우리 나라에서도 마케팅의 현장에서 CEP를 사용하는 모습을 빨리 보고 싶어서 입니다. 실체가 있는 이야기이기에 저는 우리나라 1년 후의 마케팅 씬의 모습이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