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3회에 걸쳐 Category Entry Points(CEPs)의 개념과 활용 전략을 살펴보았습니다. 이번에는 어떤 배경에서 CEP 개념이 만들어졌지, 만들어 진 이후에 어떻게 발전해왔고, 현재 마케팅 현장에서 어떻게 수용되고 있는 지에 대해서 설명해보겠습니다.
반복이 되겠습니다만, 카테고리 엔트리 포인트란 소비자가 특정 제품 카테고리를 구매하는 상황으로 진입할 때 떠올리는 생각이나 기억의 단서를 의미합니다. 즉 구매자가 구매 결정을 내리기 직전에 마음속에 떠올리는 상황, 이유, 용도, 감정 등의 키워드를 가리키며, 이는 해당 카테고리와 연관된 브랜드들을 떠올리는 출발점이 됩니다. “샤워를 마친 후 피부 보습이 필요할 때”라는 상황은 바디로션 카테고리의 좋은 CEP가 될 수 있고, 이때 소비자가 특정 브랜드를 긍정적으로 연상하면 그 브랜드를 구매하게 될 확률이 높아집니다. 과거 마케팅에서 논의되던 사용 상황(usage occasion)이나 니즈 상태(need state)와 맥을 같이하지만, 이러한 CEP 개념은 이를 보다 체계적으로 측정하고 전략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 중요한 차이점이자 강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CEP의 개념은 호주의 에렌버그-배스 마케팅 과학연구소(Ehrenberg-Bass Institute)를 중심으로 2010년대 중반 탄생했습니다. 특히 이 연구소의 바이런 샤프(Byron Sharp)와 제니 로마니우크(Jenni Romaniuk)가 주장하던 증거 기반 마케팅의 일환으로 발전한 컨셉으로 증거기반 마케팅(Evidence-Based Marketing)은 감이나 기존 관행이 아닌, 과학적 데이터와 실증적 연구를 기반으로 마케팅 전략을 수립하는 접근 방식으로 소비자 행동 데이터, 실험 결과, 시장 조사를 분석하여 의사결정을 내리며, 효과적인 전략을 검증하고 최적화하는 과정을 말하는데 CEP는 바로 이 증거 기반 마케팅의 구체적인 실행을 위해 개발된 개념입니다.
바이런 샤프는 2010년 출간한 그의 저서 『How Brands Grow』(빨간책)에서 브랜드 성장의 핵심으로 정신적 가용성(Mental Availability)과 물리적 가용성을 강조했고, 2015년에 로마니우크 등과 공저한 『How Brands Grow Part 2』(파란책)에서 구매 상황별로 브랜드가 쉽게 떠오르게 만드는 방법으로 CEP 개념을 구체화했습니다.
이 두 사람은 책에서 샴페인 브랜드 사례를 통해 “승진을 축하하기 위해” 같은 구매 동기가 해당 카테고리의 CEP가 될 수 있음을 보였고, 이러한 CEP 식별을 위한 5가지 질문 프레임워크 등을 제시했습니다. 이는 기업이 단순히 제품 속성과 포지셔닝만 강조하는 기존 접근과 달리, 소비자 입장에서 어떤 계기로 카테고리에 발을 들이는지에 주목하도록 한 것입니다.
샤프와 로마니우크의 이론은 마케팅의 기본 가정에 도전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 때문에 이 책을 읽는 것이 불편하다는 분들이 많습니다만, 이들은 “브랜드는 차별화가 아니라 정신적/물리적 가용성으로 경쟁한다”고 강조하며, 더 많은 구매 상황에서 더 많은 소비자에게 떠오르는 브랜드가 성장한다고 보았습니다. 전통적인 브랜드 인지도(brand awareness) 개념이 “제품군 이름을 들었을 때 떠오르는 브랜드”에 초점을 맞췄다면, 정신적 가용성은 “구체적인 구매 맥락에서 떠오르는 브랜드”에 초점을 맞춥니다. 인지도라는 것은 제품군이라는 인위적 분류법에 의한 카테고리에 연결된 것이어서는 안되고 생활하는 소비자의 실제 상황에 연결된 것이어야 한다는 주장인 것입니다.
샤프는 브랜드 인지도 설문이 특정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콜라 하면 생각나는 브랜드?”같은 방식으로 진행되서는 안된다고 말하면서 대신에 “무더운 날 목이 마를 때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콜라는?”처럼 상황에 결부된 기억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설문을 통해 브랜드 인지도가 파악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CEP는 소비자 기억 속 ‘카테고리로 들어가는 문’으로, 브랜드가 각종 구매 순간에 연결 고리를 만들 수 있도록 하는 마케팅 개념으로 정립되었습니다. 제니 로마니우크 교수는 이후 브랜드 자산 측정과 CEP 분석 기법을 계속 발전시켜 관련 학술지 편집과 저서를 통해 이 개념을 확산시켰습니다. 오늘날 CEPs는 브랜드의 정신적 점유율을 구축하는 과학적 마케팅 이론의 중요한 요소로 자리잡았습니다.
CEP 개념은 등장 이후 다양한 산업의 마케팅 전략에 응용되면서 그 효과가 입증되고 있습니다. 특히 FMCG 분야에서 CEP는 브랜드 확장과 커뮤니케이션 전략의 핵심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글로벌 소비재 기업인 Unilever, P&G 등의 마케팅 팀은 신제품 기획이나 광고 캠페인 시 전통적인 타겟 세분화 대신 소비자의 사용 맥락과 동기(예: “출출할 때 간식이 필요하다”, “아침에 상쾌함이 필요하다” 등)를 파악하여 브랜드를 해당 CEP와 강하게 연결하는 전략을 구사합니다.
실제 사례로, 한 글로벌 FMCG 브랜드는 에렌버그-배스 연구소의 조언을 받아 소비자들이 언제, 왜 해당 제품을 쓰는지 스토리텔링 기법으로 수집한 후 AI 알고리즘으로 주요 CEP를 추출했습니다. 이어 각 CEP별로 자사 브랜드의 ‘정신적 시장점유율'(mental market share)을 설문으로 계량화하여 경쟁사 대비 강점과 약점을 파악하고, 향후 공략해야 할 유망 CEP를 도출했습니다. 이처럼 FMCG 업계에서는 제품 사용 상황에 대한 정성·정량 데이터를 활용해 CEP를 찾아내고 브랜드 성장의 돌파구로 삼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자동차와 기술(Tech) 산업에서도 CEP 개념의 활용이 관찰됩니다. 한 예로 자동차 시장에서는 소비자의 구매 동기가 세분화되어, 차량 유형별 CEP가 다르게 나타납니다. 실제로 뉴질랜드의 한 브랜드 컨설팅사 사례에 따르면, 소비자가 “나와 배우자가 탈 작은 시내 주행차”를 찾을 때 스즈키 스위프트나 토요타 야리스가 먼저 떠오른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이 경우라면 해당 차량 브랜드들은 “소형/컴팩트”, “1~2인용”, “도심 주행” 등의 CEP를 획득한 것이 됩니다. 반대로 “가족용으로 넉넉하고 장거리 운전에 편한 차”를 생각하면 미쓰비시 아웃랜더 같은 SUV가 연상된다고 답했기 때문에 아웃렌더로서는 “패밀리카”, “장거리 여행 편의” 등이 자신의 CEP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자동차 브랜드들은 자신들의 차량이 연상되는 대표적인 사용 CEP를 파악하고 지속적으로 CEP를 늘리기 위해 다양한 모델 라인업과 마케팅 메시지를 조정하는 시도를 합니다.
테크 분야에서도 비슷합니다. 스마트폰의 경우 “사진을 잘 찍고 싶을 때”, “최신 기술을 경험하고 싶을 때”, “배터리가 오래 가는 폰이 필요할 때” 등을 대표적인 스마트폰 분야의 CEP로 꼽을 수 있는데, 실제로 애플 아이폰은 “이쁘게 나오는 사진”의 카메라로서, 삼성 갤럭시는 “오래가는 배터리” 혹은 “혁신적인 최신 기술”등의 각기 다른 CEP를 선점해왔습니다.
CEP 개념은 아직은 완전히 글로벌하게 퍼진 개념은 아닌 것 같습니다. 현재까지는 지역별로도 수용도에 차이가 있는데 호주와 뉴질랜드는 에렌버그-배스 연구소가 위치한 지역답게 비교적 이 개념에 익숙한 시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유럽과 북미도 CEP 개념이 마케팅 서적과 컨퍼런스를 통해 빠르게 전파되고 있는 지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국에서는 마케팅 권위자 Mark Ritson이 Mini MBA 과정에서 CEP를 “타겟 세분화의 대안으로서 현대 브랜딩에 필수적인 개념”으로 소개했고, Marketing Week와 Campaign지 등 업계 매체들은 CEP의 중요성을 다룬 기사를 여러 건 싣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코카콜라, 마즈(Mars)와 같은 글로벌 기업들의 마케팅 팀은 신제품 출시나 캠페인 기획 시 CEP 분석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B2B 산업에서는 링크드인의 B2B 인스티튜트(B2B Institute)가 에렌버그-배스 연구진과 함께 CEP 개념을 전파한 덕분에, IBM, SAP와 같은 기업들도 고객사의 구매 여정에서 어떤 순간에 자사 서비스를 떠올리게 할지를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아시아 지역에서는 일본이 가장 열렬하게 CEP를 받아들이고 있는 국가라고 할 수 있는데, 일본의 대형 리서치 업체인 마크로밀(Macromill) 이 CEP 개념을 적극적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한 마케팅 매거진의 분석에 따르면, “기업의 시장 점유율 확대와 카테고리 성장이라는 두 가지 성장 원천을 전략적으로 이끌어내는 데 CEP가 유용하다”고 평가하였으며, 제품·서비스를 연상시키는 소비자 측면의 단서를 찾아내는 기법으로 CEP가 주목받고 있다고 소개했습니다. 이처럼 전세계 마케팅 현장에서 CEP 개념이 빠르게 수용되어, 브랜드 전략 수립과 성과 측정에 활용되는 추세입니다.
향후 마케팅 전략에서 CEP 개념의 역할은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됩니다. 오늘날 미디어 환경 파편화, 소비자 행동의 변화, 그리고 AI 및 데이터 기술의 발전은 CEP 접근법과 결합하여 정교한 브랜드 전략을 수립하는 데 기여할 것입니다. CEPs 개념은 탄생한 지 10여 년 남짓한 비교적 새로운 마케팅 프레임워크이지만, 학계의 이론적 뒷받침과 다수의 성공적인 실무 사례를 통해 빠르게 주류 마케팅 전략으로 자리잡아가고 있습니다.
이상 여러 국가의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아직 한국에서는 CEP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필립코틀러 선생님의 애제자들이 많아서 일까요? 앞으로 기술 발전과 함께 소비자의 맥락과 상황을 파악하는 기술이 고도화 되면 CEP 활용은 더욱 확산 될 것입니다. 마케터들은 소비자들이 어떤 순간에 우리의 브랜드를 떠올리게 만들 것인가 하는 질문을 중심에 두고 캠페인을 설계하게 될 것입니다.
이는 곧 마케팅의 출발점이 제품이나 브랜드 자체가 아니라, 소비자의 삶과 욕구의 맥락으로 이동함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패러다임 변화 속에서 CEP 개념은 미래 마케팅 전략의 핵심 축으로서 더욱 발전할 것이며, 동시에 치열한 CEP 경쟁 속에서 브랜드 고유의 목소리를 잃지 않는 것이 새로운 도전 과제가 될 것입니다. 기업들은 데이터와 창의성의 조화를 통해 CEP 전략을 고도화해야 하며, 궁극적으로 소비자가 어떠한 상황에서든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 있는 브랜드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이는 쉽지 않은 길이지만, CEP라는 나침반을 활용한다면 객관적인 데이터에 기반해 브랜드 성장의 기회를 포착하고 실행에 옮길 수 있을 것입니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장에서 카테고리 엔트리 포인트를 선점하는 브랜드가 미래의 승자가 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입니다.